본문 바로가기
자료/성명·논평·기자회견

[미디어이슈브리핑] 전북일보 정치부장의 민주당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회’ 참여와 ‘저널리즘의 기본원칙’ (2017년 12월)

by 전북민주언론시민연합 2018. 2. 21.



전북일보 정치부장의 민주당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회참여와 저널리즘의 기본원칙

  박 민 참여미디어연구소장

 

저널리즘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부제가 붙은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저널리즘을 염려하는 언론인 위원회’(The Committee of Concerned Journalists : CCJ)1997년부터 미국 저널리즘이 당면한 문제를 진단하고 처방하기 위해 시작한 프로젝트의 결과물로 2003년 초판이 발행된 이후, 2007년 개정된 책이다. 개정판이라고 해봤자 이미 10여 년 전이고, 무엇보다 여기서 제시하는 10가지 저널리즘의 기본원칙들은 너무 흔해서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주목하는 이유는 상업성과 정파주의의 함정에 빠진 채,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이 제기하는 새로운 도전에 침몰해가는 한국 저널리즘의 진단이자 처방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특히 시민 저널리즘을 창조한 과학기술은 정치권력이 공중을 상대로 그들의 이미지를 강화하는데 똑같이 활용된다는 언급은, 누구나 미디어가 되는 디지털시대에 특히 더, 저널리즘이 왜 진실을 전달함으로써 시민의 신뢰를 얻어야 하는지를 말해준다. 오늘날 디지털 기술은 진실과 거짓을 똑같이 빠르게 전파한다. 결국 수용자들은 이런 혼란스런 세상에서 거짓과 진실을 일일이 구분하는 일이 더욱 어려워졌고, 그 틈새를 파고든 것이 가짜뉴스를 비롯한 정파적 저널리즘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저널리즘의 가능성이란 결국 수용자의 신뢰를 획득하는 일이라는 성찰을 제공한다. 플랫폼 경쟁이 가열될수록 콘텐츠를 파는 대신 수용자와의 관계를 판매하는 미디어상품의 이중성은 더욱 심화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신뢰의 토대는 그들의 가치와 판단, 권위, 용기, 전문성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의무감이다.

저널리즘의 생존원칙으로서 신뢰를 언급한 이유는 최근 전북일보 현역 정치부장의 민주당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회참여문제를 검토하기 위해서다. 민언련은 지방선거보도를 책임지는 현직 정치부장이 특정 정당의 후보자공천과정에 직접 위원으로 참여하는 것은 권언유착의 소지가 있으며, 무엇보다 취재원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저널리즘 윤리를 위반한 사례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한 전북일보의 반응은 윤리강령 위반이 아니며, 오히려 정치부기자의 전문성과 객관성을 공천과정에 반영함으로써 공익에 부합할 수 있다는 반론이었다. 특히 윤리강령에 이에 대한 명문조항이 없다는 것을 근거로 삼았다. 실제로 한국신문윤리위원회의 윤리강령이나 실천요강에 이를 직접적으로 언급한 조항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전북일보의 주장이 맞는 걸까?

우리나라 윤리강령의 기초가 된 미국에는 이와 관련한 명문규정들이 다수 존재한다. 예를 들어 <뉴욕타임즈>기자와 편집인은 홍보 임무를 행하거나 뉴스원의 자문에 응할 수 없다. 뉴스원에 의해 주도된 작업을 위해 일하거나 그 작업에 기여할 수도 없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AP통신> 역시 이해상충(Conflict of interest)’ 조항에서 이해상충 또는 상충으로 보여지는 정치, 지역문제, 시위운동, 사회운동 등에 관여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는 조항을 별도로 명기하고 있다. <워싱턴타임스>보도기준 및 윤리(Standards and Ethics)’에서 부장의 승낙 없이 외부에 자유기고나 연설도 금지하고 있으며 언론의 관심과 조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사람들과의 친밀한 교제나 사회적 결합을 경계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오늘날 각 나라에서 보편화되어 있는 신문윤리강령은 미국의 캔사스주의 신문편집인협회가 1910년에 제정한 윤리강령을 그 효시로 보고 있다. 그런데 어째서 미국에는 있는 취재원으로부터의 독립조항이 우리나라 윤리강령에는 빠져있는 걸까? 결론부터 말한다면 빠져있는 것이 아니다. ‘언론의 독립과 관련한 포괄적 규정에 포함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가령 신문윤리실천요강 제1조에 언론의 자유, 책임, 독립을 규정하고 있으며, 이는 언론인은 자유롭고 책임있는 언론을 실현하기 위해 부당한 억제와 압력을 거부해야 하며 편집의 자유와 독립을 지켜야 한다는 전제아래 각각 정치권력으로부터의 자유’, ‘사회·경제 세력으로부터의 독립등을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언론의 자유와 독립이 부당한 억제와 압력에 저항하는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부당한 청탁이나 이해관계에 휘둘려서는 안된다는 의미임을 이해하기란 어렵지 않다. 무엇보다 윤리강령이란 것이 언론의 사회적 책임과 신뢰를 높이기 위한 스스로의 경계이자 규율이라는 점을 상기할 때 이는 보다 명확해진다.

누군가는 자신이 어느 행사를 보도하고, 그 행사의 참여자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참석자가 되면 기자가 수행해야하는 다른 모든 일들이 영향을 받게 된다. 사물을 다른 관점에서 보기가 어려워진다. 상대편 혹은 다른 쪽에 있는 취재원들의 신뢰를 얻는 일은 더욱 힘들어진다

취재원으로부터의 독립은 시민에게 봉사하는 저널리즘이 수행해야 할 기본 원칙이다. 이를 대체할 그 어떤 명분도 변명에 불과하다. 더 큰 문제는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오만이다. 저널리즘의 위기가 시작된 배경이 무엇인지, 그리고 누구나 미디어가 되는 세상에서 저널리즘이 살아남을 수 있는 핵심가치가 무엇인지 되돌아 볼 때다.

 

※ 지난 2017 말하라 소식지 겨울호 미디어이슈브리핑에 실린 내용입니다.


소식지(1712)-저널리즘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pdf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