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과 함께 만들어간 언론 운동 역사 20년
1. 정직한 감시자, 전북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창립
언론의 민주화와 사회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언론감시, 비판, 견제 그리고 발전적인 대안을 제시하며, 사회적 공기로서의 언론의 사명을 다하도록 하는 언론시민단체가 1999.12.16일 전라북도 전주 경원동에 문을 열었다. 1999년 9월 3일, 전주시민회 언론분과와 김동민 교수를 중심으로 하는 전북지역 민언련 준비위원회가 단일조직 결성에 합의한 지 4개월 만이다.
‘전북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전북도민’의 주체적인 언론 수용을 돕고,
‘전북지역언론’을 중심으로,
‘민주언론’을 명기하여 언론운동의 상을 제시하였으며,
시민의 주체적 참여를 보장하는 뜻에서 ‘시민연합’이라 칭하게 된다.
주요 사업내용으로 지역 언론 모니터 활동, 시민대상 미디어교육프로그램 운영, 언론개혁 실천 활동 등을 설정한다.
2. 지역 최초 총선 모니터 활동
전북민언련 창립과 함께 첫 번째 사업으로 당시 총선시민연대가 낙천, 낙선운동으로 맹활약하던 시기, 지역 언론 대상 선거보도 모니터 활동에 나서게 된다.
2000년 1월 1일부터 4월 14일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는 모니터 보고서가 홈페이지에 올라왔고, 주간보고서와 월간보고서, 주제별보고서가 시기마다 공개됐다.
후일 ‘2000년 선거보도감시연대’ 종합보고서로 발간되기도 했던 모니터 보고서는 지역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언론사들의 반응도 생각 이상이었다. 모니터 보고서에서 자기 신문 순서가 뒤에 있다는 항의가 들어오는가 하면, 당시 정상적인 발행이 이뤄지지 않아 모니터 대상에서 제외됐던 신문사들로부터는 자신들도 모니터 대상에 포함시켜 달라는 항의 아닌 항의가 들어오기도 했다.
3.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시작
시민들과 함께 하는 언론개혁운동을 위해 미디어교육 프로그램도 하나둘씩 개설되기 시작했다. 전주시민회가 6회째 이어오던 ‘언론학교’ 프로그램을 계승하여 2000년 ‘제7기 언론학교’가 문을 열었고, 어린이 대상 매체 이해 프로그램인 ‘어린이 방송교실’도 개설됐다. 뿐만 아니라 그 대상을 보다 전문화하기 위해 대학생 대상 ‘대학언론강좌’와 모니터요원 양성을 위한 ‘학부모미디어교실’이 새롭게 선보였다.
당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사안을 중심으로 초청 강연도 꾸준히 열렸다. 2000년 당시에는 강정구 교수, 2001년에는 노무현 위원의 초청 강연회가 열려 많은 시민들의 관심을 받았다.
전북민언련 20년 동안 개설된 강좌 수는 150여 개가 넘는다. 언론학교가 26회째를 맞이했고, 어린이 방송교실은 제작 교육을 가미한 ‘어린이 미디어 힐링캠프’로 그 규모와 영역이 확대되었으며, 청소년 미디어교실이 추가되었다. 학부모 미디어교실은 모니터교실과 미디어교육 등을 세분화되었고, 기자학교와 NIE교육, 비디오액티비스트 강좌 등이 전문과정으로 개설되었다.
안티조선운동이 한참일 때는 안티조선강좌가 개설되기도 했고, 14개 시군을 찾아가는 ‘찾아가는 미디어교육’을 통해 지역밀착성을 강화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미디어포럼’을 통해 월별 세미나를 진행하기도 했다.
4. 안티 조선운동
언론개혁 운동은 비단 보도비평에 국한될 수는 없었다. 언론환경에 대한 이해를 비롯하여 법제와 구조에 변화가 필요했다. 이 가운데 전북민언련 출범과 함께 본격화되기 시작한 것이 조직적 안티조선운동이다.
2000년 당시 전북민언련 대표였던 김동민 교수의 발의로 조선일보반대시민연대가 공식 결성되었고, 2001년부터 지역 활동가 33인이 참여 한 안티조선 1인 시위가 객사 앞에서 진행되기도 했다. 또한 신문개혁을 촉구하는 자전거대행진이 전국으로 확산되었으며, 안티조선 순회 선전단이 전국을 누비기도 했다.
2004년에는 조선일보의 일제 강점기 친일 행정을 심판하기 위하여 <안티조선 민간법정>을 진행했다. 특히 일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추진위원에 참여하며 안티조선 민간법정의 의미를 일깨웠다.
5. 관언유착의 고리, 계도지 예산 폐지 운동
안티조선운동이 조선일보 등 수구족벌신문의 폐해에 대한 비판이었다면, 지역사회에서는 관언유착의 문제가 가장 시급한 해결과제로 떠오르고 있었다.
이 가운데 지방자치단체가 편성하던 계도지 예산 폐지운동이 지역사회에서 벌어진다.
2001년 9월 지역단체와의 간담회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계도지 예산 폐지운동이 펼쳐진다. 이후 14개 시군 단체장과의 면담, 시군 의회와의 간담회, 항의집회 등이 열렸고, 2002년 14개 시군 모두에서 계도지 예산이 전면 폐지되기에 이른다.
계도지 예산은 박정희 시절 통리반장들에 대한 통제 강화 및 집권논리 전파를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가,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신문간의 유착 고리를 강화하는 통로로 활용되어왔던 대표적 문제예산이었다.
6. 기자실 개혁 운동
아울러 기자실에 대한 개혁운동도 본격화되었다. 기자실 출입시스템이 획일화된 언론보도를 양산하고, 촌지 등 부정적 관행이 유통되는 통로로 변질되고 있는 상황에서 기자실 시스템에 대한 전면 개혁이 필요했다.
2002년 정읍시를 필두로 기자실이 폐지되고, 개방형 브리핑룸이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이후 여러 시군과 전라북도청 등에서 개방형 브리핑룸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후 브리핑룸의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해 현재는 시설 중심보다 기자실 문화의 변화를 중심으로 움직여가고 있다.
7. 지방자치단체 홍보 예산 실태 공개
2007년부터는 지방자치단체의 홍보예산에 대한 개혁운동에 나서게 된다. 연간 40억 원 이상이 대언론 홍보예산으로 편성되지만, 정작 그 기준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난립구조하의 지역신문시장을 유지시키는 고리로 홍보예산이 작동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에서 홍보예산 집행기준의 마련과 왜곡된 예산집행내역에 대한 삭감운동이 필요했다.
2007년부터 현재까지 전라북도를 포함하여 14개 시군, 의회, 교육청,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홍보예산 실태조사를 펼쳤고, 그 결과를 토대로 총 6개 항에 걸친 홍보예산 편성 의견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그 결과 전라북도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관행적으로 집행하던 선심성 예산을 대폭 삭감하였다.
8. 지역신문발전지원특별법 제정, 고사 위기의 지역 언론에 대한 지원
문제가 있는 부분은 바로잡아야 하지만, 지역 언론 환경에서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는 한국사회의 불균형 발전전략에 따른 지역사회의 피폐화와 지역 언론의 고사 위기라 할 수 있다. 이를 바로잡는 것 역시 지역시민언론운동의 몫이었다.
그 가운데 지역신문발전지원특별법이 제정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2003년 6월 지역신문 발전 지원 및 개혁을 위한 전국적 연대기구가 결성된다. 지역언론개혁연대가 그것으로 민언련, 바른지역언론연대, 전국언론노조, 지방분권국민운동, 기자협회, 언론학회 등 6개 단체 관계자들이 참여해서 조직한 모임이었다.
여기서 지역신문발전법 시안이 만들어졌고, 오랜 토론과 공론화 과정을 거쳐 마침내 2005년 지역신문발전지원특별법이라는 이름으로 지역신문에 선택적 지원방안을 포함한 법안이 마련됐다. 전북민언련에서는 당시 송기도 공동대표를 비롯하여 권혁남(현 공동대표), 박민 정책실장 등이 창립준비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9.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대안매체 설립운동
언론개혁은 궁극적으로 시민 모두가 자신의 매체를 갖는 것을 통해 실현될 수 있다. 물론 그것은 다양한 방식으로 실현될 수 있다. 우선, 전통적 매체에 대한 시민의 참여공간을 확대하는 방식이다.
시청자위원회를 비롯하여 퍼블릭액세스 프로그램 확대 등이 그 방식이다. 보다 적극적으로 시민주 방식의 새로운 매체를 창간하는 일이다. 한겨레신문의 탄생이 87년 민주화운동의 성과였듯, 지역언론개혁운동의 성과물로서 지역밀착형 매체의 창립 운동도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매체 환경에 부응하는 매체 설립 작업을 들 수 있다. 공동체라디오나 인터넷 방송 등이 그 사례다.
우선 전북민언련은 지역방송과 지역신문에 대한 접근권을 강화하기 위한 작업에 나서, 2002년 전국 지역 방송 최초로 전주MBC에 <시민채널>이라는 프로그램을 편성한다.
특히 퍼블릭액세스 프로그램 활성화에 필수적인 지원구조로서의 시민미디어센터 설립 작업에도 적극 나서, 2005년 전주시민미디어센터 영시미가 전국 지역 최초의 시민미디어센터로 설립되는 성과를 얻기도 한다. 전주시민미디어센터의 설립은 2000년 통합방송법 제정 이후 한국사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퍼블릭액세스 활성화에 기념비적인 사건 가운데 하나다. 지역밀착형 시민미디어센터의 도입을 통해 시민들의 참여공간이 대폭 확장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관 주도의 미디어센터 설립 작업이 아닌 시민주도형 미디어센터가 최초로 설립되었다는 점에서도 매우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영시미는 미니 FM사업을 시작으로 공동체라디오, 마을공동체미디어 설립운동을 현재 주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밖에 지역신문발전위원회를 통해 지역신문 시민기자제도 확대에도 노력했다. 지금은 대부분의 신문들이 시민기자제도에 대한 필요성을 공감하지만, 초기에만 해도 시민기자에 대한 인식은 상당히 소극적이었다.
이외에 부안항쟁의 과정에서 대안매체 설립에 대한 요구를 모아내면서 만들어진 부안독립신문 창간 작업과 지역민에 의해 창립된 무주신문과 완주신문의 창립 과정을 지원하고, 지역주간신문들의 지원과정에 참여하기도 했다.
10. 언론악법 투쟁
2008년 12월 3일, 한나라당에 의해 전격 발의된 미디어악법 투쟁은 한 해를 온통 거리에서 살게 만들었다. 언론노조 총파업투쟁과의 연계투쟁 및 지역촛불문화제, 자전거대행진, 서명운동, 거리선전전 등 할 수 있는 모든 방식의 투쟁이 동원됐다. 주말 모악산 등반객을 대상으로 펼친 선전전은 특히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현 정부의 언론장악 시나리오는 이미 인수위 시절부터 공공연하게 논의된 사안이었다. 이에 전북민언련은 2008년 3월 지역 최초로 시민사회단체 및 언론학계, 언론노조 등 현업단체들과 지역미디어공공성위원회를 결성하여 대응해왔다.
현재 언론악법은 헌법재판소의 위법 판결에 대한 시정조치가 진행되지 않은 채, 국회의 몫으로 남아있는 상태다. 방송통신위원회를 중심으로 언론악법을 기정사실화하기 위한 시도가 진행되고 있고, 정부의 여론몰이도 계속되고 있는 등 현 정부의 강행처리 의사는 바뀔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결국 이를 막아내는 것은 시민들의 힘이다. 이를 조직하는 시민사회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11. 조선․중앙․동아일보 사설의 지역 의제 보도는 4%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의 2008년 홈페이지에 게재된 사설을 분석한 지역의제를 거의 취급하지 않았으며 지역의제는 전체 2,693건 중 45건으로 1.67%만을 차지한다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타났다. 단순히 공간적으로 지역이 거론된 사설까지 포함한다 해도 4%를 약간 상회하는 정도라는 것이다.
비수도권의 경우 인구 비중, 중앙일간지 구독률 등과 상관없이 지역 문제는 취급되지 않으며 의식적, 무의식적이든 지방의 의제가 무조건적으로 배제됨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반면 지역과 관련하여 가장 많이 다루어진 경우는 사건사고와 같이 흥미위주의 것이었는데 여전히 중앙지들이 삽화적 지방, 변고적 지방, 흥미로서의 지방이라는 틀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지역 의제의 생성 제한과 지역균형발전에 대한 왜곡은 결과적으로 지역주민들의 의사 결정을 방해함으로써 민주주의의 발전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12. 대안언론 참소리 기자의 취재 활동 방해 폐쇄적 출입처, 기자실 문화 실상 알려
전북인터넷대안언론 참소리 문주현 기자는 열악한 환경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군산 송전탑 문제, 전주대·비전대 청소노동자, 전주시 버스파업 보도, 남원의료원사태 등 지역사회 내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주로 담아낸 기자다.
2013년 전북도청 브리핑룸에서 진행됐던 학생인권조례제정촉구 기자회견 과정에서 출입을 제한받았던 경험을 토대로 취재의 자유를 제한한 전라북도의회의 언론 대응을 문제 삼았다. 또한 기자실이 여전히 특정 기자들만의 배타적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과 취재의 자유에 대해 일깨웠다. 위 내용을 담은 <기자 출입까지 막는 전북도의회>와 <전북도청 기자실에서 쫓겨나 보니 서럽네>는 언론자유와 지역주민의 알 권리가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으며 지역주민의 알 권리는 어떠한 이유로도 제한 받았을 수도 없다는 사실을 지적한 기사로 제1회 전북민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2013년)하기도 했다.
13. “전북 지역 주요 뉴스가 매일 오전에 찾아갑니다” 전북 주요 뉴스, 이달의 좋은 기사 시작
관성화 된 기사, 출입처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기사, 사주 및 회사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기사, 정치 및 경제 관련 편향된 기사, 반개혁적인 기사 등 지역 언론 모니터 활동은 민언련의 핵심 사업 중 하나이다. <지역언론브리핑>과 <주제모니터>에 더해 2014년부터는 <이달의 좋은 기사>를 실시하며 지역 언론 브리핑의 효과를 강화해 나갔다. 외면받던 지역 뉴스가 시민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통로를 만드는 시작점이 되었던 세줄 뉴스는 2016년 <전북 주요 뉴스>라는 이름으로 변경되며 SNS를 중심으로 유포되면서 시민들의 접근성을 높여나갔는데 특히 이달의 좋은 기사는 지역 언론의 좋은 보도를 시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린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14. 관행적 공짜 해외 취재·연수에 제동
지역 언론을 대상으로 제공되는 공짜 해외 취재와 연수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며 관행적으로 이를 수용하던 기자사회에 제동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2014년 전북은행에서 진행한 공짜 연수를 시작으로 2016년에는 전주 상공회의소 출입기자단 중국 연수 제공, 2017년 전주지검 조사에서는 부안 출입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업체의 공짜 해외 취재가 확인되면서 출입 기자를 대상으로 한 암묵적 혜택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2015년 전북기자협회는 연수규정을 신설하면서 공짜 해외 취재·연수에 자정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15. 김영란법과 지역 언론, ‘언론스폰서’ 청산의 기회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방지에 관한 법률, 즉 『김영란법』이 2016년 9월 28일에 시행되었다. 처음 제안된 지 929일 만의 일이다. 정치인‧공무원‧언론인 등 직무 관련성이 없는 사람에게 100만 원 이상의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대가성이 없어도 형사 처벌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으로 직접 대상자만 300만 명에 이른다. 다른 직업 종사자보다 더 높은 직업윤리 의식을 요구받는 언론사에게 『김영란법』 적용을 요구하는 것은 결코 지나치지 않다. 무엇보다 기자들을 포함한 언론인이 어떤 명목으로든지 돈을 받는 것과 기자의 양심, 윤리는 결코 양립할 수 없다. 『김영란법』은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를 향한 우리 사회의 소중한 합의이기에 지역 언론이 낡고 부패한 관행으로부터 벗어나는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삼자는 입장을 발표했었다.
16. 전북 언론인 무더기 비리 연루에 대해 사과한 지역 언론사 0곳
2016년부터 7개월간 진행된 전주지검 전북 언론사 조사 결과 전북지역에서 처음으로 김영란법 위반 혐의가 적용되었던 삼남일보 대표를 포함해 전북 지역 14개 언론사 간부 10명(대표, 부사장, 편집국장)과 기자 13명 등 총 26명이 기소(3명 구속)되었다.
사이비기자의 금품 갈취 범행, 보조금 횡령, 열악한 재무로 인한 최저임금 미지급, 청탁금지법위반 및 배임수재행위 등으로 전북 언론인이 무더기로 비리에 연루된 것이다.
지역 기자의 광고 협박 및 횡령 건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지만 지역사회에서 소문으로만 돌던 최저임금도 안 되는 지역 기자 임금 지급 실태와 주재기자 무임금 계약과 같은 지역 언론사의 구조적 문제가 전주지검에서 구체적으로 파악된 것이다. 이에 지역사회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며 지역 언론사들은 현재 기소된 대표, 편집국장, 주재기자 비리 문제에 대해 지면을 통해 그 실상을 명명백백히 보도하고 즉각 사죄하라고 요구했으나 이 문제와 관련 지면에 사과한 언론사는 한 곳도 없었다.
17. “이제는 마을공동체 미디어다”
전라북도에서는 전국에서 처음(2016년 12월 31일)으로 공동체마을미디어지원조례가 제정되어 시행되고 있다. 마을공동체미디어들의 창간작업이 확산되고 있지만 운영재원의 안정성 및 취재인력의 제한 등으로 지속가능한 운영모델을 구축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조례는 마을미디어에 대한 공적지원구조를 확보하는 데 필수적인 과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지속가능한 발전모델을 구축하는 것은 마을공동체미디어들의 몫이다. 무엇보다 공동체 구성원의 참여와 합의에 의해 운영되는 마을미디어의 속성상 공동체 구성원의 적극적인 참여를 제고하는 것이 핵심이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토대로서 마을공동체미디어의 위상을 정립하고 지역사회에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마을미디어에 대한 ‘효능감’을 확인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유권자 의제를 직접 기획하고, 전국 최초로 광역기초의원 토론회를 전북 마을미디어와 티브로드, 시민사회단체가 공동으로 진행한 ‘우리동네선거방송’ 프로젝트는 지역주민들이 마을미디어에 대한 ‘정치적 효능감’을 확인시킨 사례다. 그동안 방치되었던 지방의회의 구성 과정에 마을미디어들의 적극적 개입이 확인될 때, 또 그 과정에서 제한적으로 이뤄졌던 지역공동체의 참여가 확장될 때 참여형 공동체미디어로서의 마을미디어가 존재하는 것임을 깊이 각인시킨 프로젝트였다.
18. 공영방송 정상화 투쟁, 언론개혁 없이는 적폐청산도 사회개혁도 이룰 수 없다
2016년 겨울 주권자들은 삭풍도 마다하지 않고 주권 회복을 위한 싸움에 기꺼이 나섰다. 그 결과 국정농단 세력들은 권좌에서 쫓겨났고, 구치소에 갇히는 신세로 전락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촉발된 박근혜 탄핵은 무소불위 제왕적 권력자도 결코 국민을 거스를 수 없다는 위대한 역사적 교훈을 재확인했다. 촛불시민은 박근혜․최순실 사태에 ‘언론도 공범’으로 규정하고 권력의 나팔수로 전락한 공영방송은 물론 수구기득권 언론들에게 준엄한 경고를 보냈다. 이들 수구보수 언론은 초기에는 촛불민심의 위세에 밀려 ‘촛불혁명’ 운운했지만, 결국 본색을 드러내며 기득권 지키기에 사활을 걸었다. 4대강 삽질에서부터 세월호 참사, 위안부 한일야합, 역사교과서 국정화, 이른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이르기까지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저 무도한 온갖 패악질이 가능했던 것은 바로 언론이 감시견으로서 제 역할을 내팽개친 채 온갖 왜곡·편파보도를 일삼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론적폐 청산과 언론개혁은 가장 우선적으로 완수해야 할 과제임이 분명하다. 언론개혁은 모든 민주개혁을 가능하게 만드는 출발점이고, 언론개혁 없이 민주주의는 한낱 공염불에 불과하다. 전국과 지역에서 총 312명이 참여한 <언론개혁·적폐청산을 위한 원탁회의>는 언론개혁과 적폐청산이 시대적 요구임을 주장했다.
2017 공영방송 정상화 투쟁 과정에서 지역의 동력을 끌어내기 위한 노력은 쉽지 않았다. 지역 언론노조의 활동은 내부 투쟁에 머무르는 경향이 컸다. 지역사회와 시민들의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 <그들이 없는 언론 7년>과 <공범자들>로 전북민언련은 지역 순회 활동을 이어갔다. 특히 작은 시군단위에 해직 기자를 초청해 공영방송 정상화 투쟁의 의미를 알렸고, 언론노조 전주MBC 지부와 연대해 지역에서의 싸움도 진행되고 있음을 지역민들에게 알렸다. 지역 노조와의 연대는 지역민들에게 지역 언론의 필요성을 알리고, 또한 지역민들의 언론 개혁에 대한 바람을 전달할 수 있는 통로였다고 평가한다. 해직된 언론인들을 명예롭게 복직시키고 정권에 휘둘리지 않는 독립된 언론을 시민들의 힘으로 만들자는 의미를 강조했던 지역과 노조와 시민사회단체의 연대를 보여줬던 활동이었다.
19. 자광과 지역 언론의 유착 관계
대한방직 부지를 매입하고 143층 타워를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주)자광 건설회사가 원활한 사업 추진을 위해 퇴직 경찰, 공무원, 법조계 및 지역 언론 기자를 영입해 여론전을 진행하려 했다.
자광은 이미 2017년부터 지역 신문사를 대상으로 막대한 홍보비를 지급하고 있었고 새전북신문이 미스코리아 행사에서 자광 계열사에 천만 원의 후원을 받은 것이 전주 지검에 의해 확인되기도 했다. 또한 지역 신문사의 주요 기자들을 만나 자광에 영입 제안을 하기도 했다.
이후 전북일보 관련 우석대학교의 연수원을 자광이 약 30억 원에 매입한 사실이 전주KBS 보도(2018년 8월)를 통해 확인되었고 전주MBC에서는 자광이 전북일보의 주식을 45% 45억 원에 매입했다는 것을 보도했다(2018년 10월). 하지만 지역신문에서는 이와 관련해 보도를 하지 않았으며 전북일보는 특별한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았다. 이에 전북민언련에서 10월 12일 <전북일보는 자광과의 석연찮은 거래에 대해 해명하라!>라는 성명을 발표하자 전국의 주요 미디어비평지 및 중앙 매체의 집중적인 보도가 이뤄지기도 했다.
20. 회원과 함께 만들어간 전북민언련
회원 없는 시민운동은 고사할 수밖에 없다. 지난 20년 수많은 회원들의 후원과 격려가 전북민언련을 지탱해왔던 힘이다. 신문분과, 방송분과, 뉴미디어분과 등 분과 중심의 활동 방식을 채택한 전북민언련은 이후 정비과정을 거쳐, 크게 모니터 모임과 영화모임, 백두산이라는 산행모임 등으로 특화되었고, 모꼬지, 송년회 등을 통해 회원모임을 꾸려가고 있다. 특히 전북민언련 회원들의 힘이 발휘된 것은 언론악법과 공영방송 정상화 투쟁 과정에서였다. 오거리광장의 촛불문화제,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한 지역 상영회가 성사될 수 있었던 데는 이런 회원들의 힘이 절대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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