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을 치닫는 삼성의 광고통제, 이것이 ‘일류’ 인가
- 한겨레 독자는 삼성의 ‘대국민 사과’ 받을 자격도 없는가 -
‘비판언론 손보기’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삼성의 ‘광고통제’가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1월 22일 삼성은 태안기름유출 사고와 관련해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는 ‘사과광고’를 삼성중공업 명의로 전국단위 일간신문에 게재했다. 그 동안 태안기름유출 사고와 관련해 ‘나 몰라’식의 무책임한 대응으로 태안주민 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의 공분을 샀던 삼성이 이제야 ‘사과광고’로 생색내기를 하는 것 자체도 우습지만, 광고를 내는 과정에서 보인 삼성의 행태는 그야말로 치졸하기 짝이 없다. 태안주민 뿐만 아니라 온 국민을 상대로 한 ‘삼성의 사과’가 분명함에도 삼성은 유독 한겨레신문에는 ‘사과광고’를 게재하지 않았다. 삼성비자금 문제와 관련해 진실을 가장 적극적으로 보도한 이유로 미운 털이 박힌 한겨레에 대해 삼성이 광고통제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단체는 지난 16일 언론개혁시민연대, 전국언론노조, 참여연대 등 언론․시민단체들과 함께 삼성 본관 건물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지금 당장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에 대한 광고탄압을 중단할 것을 요구”한 바 있다. 이에 앞서 우리 단체는 지난 10일 ‘광고를 매개로 한 삼성의 신문통제 실태현황 분석보고서’를 발표해 삼성이 삼성비자금 문제를 적극적으로 보도한 신문에 대해 벌이고 있는 광고통제의 실상을 낱낱이 고발하기도 했다. 우리 단체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해 12월 1일부터 올해 1월 7일까지 다른 신문들은 15~45건에 이를 정도로 아무런 문제없이 삼성의 광고를 수주하고 있었지만,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은 단 한 건의 광고도 삼성으로부터 받지 못했다.
그 이후에도 경향신문에 10일 전국 일간신문에 실린 삼성서울병원의 ‘암센터 진료 개시’ 광고 한 건이 이틀 지난 12일 게재됐을 뿐, 한겨레에는 이마저도 끝내 실리지 않았다. 그리고 급기야 22일에는 8개 종합일간지와 6개 경제지 등 전국 단위 신문들은 물론 지방일간신문에 삼성중공업의 ‘대국민 사과’ 광고가 실렸음에도, 한겨레에만 유독 광고가 실리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벌어지게 된 것이다.
삼성중공업은 사과 광고에서 “국민 여러분과 지역 주민들께 깊이 사과드립니다”라고 했다. 이번 ‘사과’는 그 동안 삼성 측의 책임을 묻고 대책마련을 촉구해 온 성난 여론에 귀를 막아왔던 삼성이 검찰에서 삼성중공업의 ‘업무상 과실’ 책임을 묻는 조사 결과를 발표한 뒤에야 겨우 나오게 됐다. 그럼에도 어쨌든 삼성의 사과는 ‘국민 여러분’과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한 것이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당연히 삼성의 사과를 받을 자격이 있다. 하지만 삼성비자금 관련 보도 때문에 한겨레에 대해 속이 뒤틀려버린 삼성은 한겨레의 독자는 아예 ‘국민’ 취급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치사한 짓을 할 수 있는가.
우리는 이것만 보더라도 삼성의 오늘 사과가 진정한 사과가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앞으로 관련 당사자들과 함께 주민 여러분의 생활 터전이 조속히 회복되고 서해 연안의 생태계가 복원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을 믿을 수 없다고 판단한다.
우리는 이미 한겨레에 대한 삼성의 ‘광고통제’를 ‘비판언론 길들이기’라고 규정한 바 있다. 삼성의 사과 광고가 게재된 1월 22일 신문의 보도만 예를 들어도 어떤 신문이 자본 앞에 굴하지 않고 할 말을 당당히 하는 비판언론인지, 아닌지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하루 전인 21일 삼성과 관련한 큰 사건 두 가지가 발생했다. 하나는 삼성 특검의 삼성 에버랜드 미술품 창고 압수수색이고, 또 하나는 검찰의 태안기름유출사고 조사 결과 발표다.
비록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 비자금으로 구입했다고 폭로한 ‘행복한 눈물’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지만, 수천수만 점의 고가 미술품이 빼곡하게 진열된 에버랜드 창고는 ‘판도라의 상자’를 연상시킬 정도로 수많은 의혹을 받고 있다. 더구나 특검의 압수수색 전후 이 창고를 두고 삼성 측은 수차례 말을 바꿈으로써 의혹을 증폭시키기도 했다. 또 태안 기름유출사고와 관련된 검찰의 발표는 삼성중공업 관계자에 대해 ‘업무상 과실’의 책임만 묻고 유조선 측과 함께 ‘쌍방과실’로 처리해버려 ‘부실수사’와 ‘삼성 눈치보기’ 지적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삼성중공업 측이 악천후 속에 무리한 운항을 한 이유나 항해일지를 조작한 배경 등에 대해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그저 무한배상책임을 질 수 있는 ‘중과실’ 여부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는 데 급급했다는 이유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사안 모두에 대해 제대로 지적한 신문은 찾기 어려웠다.
이번에도 한겨레가 가장 눈에 띄었다. 한겨레는 1면 <에버랜드 창고에 고가 미술품 수천점>에서 특검팀의 압수수색 결과를 전한데 이어 <겉은 창고, 속엔 최첨단 시설>, <삼성쪽 ‘자재 창고’→‘미술품 수장고’ 말바꿔>에서 ‘에버랜드 창고’에 대해 의혹이 가는 부분과 “미술품을 발견한 창고에 대한 삼성 측의 해명은 시시각각 변했다”는 점을 꼼꼼히 지적했다. 또 <“삼성중 무리한 지시 조사안해” 부실수사 지적>과 사설 <책임규명 미흡한 태안 기름오염 수사>에서는 미흡한 검찰의 수사 발표 내용에 대해 세세하면서도 강하게 꼬집었을뿐 아니라, <삼성계열사 PC문서 ‘별도 서버’에 옮겨놔>, <“압수수색 방송 나오면 문서 챙겨 사무실 떠나라”>에서는 삼성측이 특검의 압수수색에 대비해 자료들을 따로 관리한다는 의혹을 단독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다음으로 경향신문이 <특검, 에버랜드 창고 압수수색 미술품 수천~수만점 쏟아져>, <에버랜드 판도라 상자 열리나>, <‘안내견 사육 축사’ 라더니…> 등에서 특검의 압수수색에 대해, <사상 최악 검은 재앙, 피할수 있는 인재였다>와 <‘누군가’를 대신해 닦은 ‘기름 바위’ 12개>에서 검찰 수사 발표에 대해 적극적으로 보도했다.
조선일보의 경우 <에버랜드 창고에 미술품 수천점>에서 특검의 압수수색에 대해 비교적 비중있게 보도했지만, 10면에 그쳤고, 내용에서도 “예술작품 적절히 보관하기 위해 만든 정식 수장고”라는 삼성 측의 해명에 비중을 둘 뿐 ‘말 바꾸기’에 대해서는 전혀 지적하지 않았다. 특히 <애견가 이회장 지시로 1993년 설립>에서는 그림이 발견된 곳이 “이건희 회장의 개에 대한 애정이 담긴 특별한 곳”이라며 이 회장의 ‘애견가’로서 면모를 부각해 본질에서 완전히 일탈한 보도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태안기름유출 사고와 관련해서도 <검찰, 중과실 판단 안내려… 피해 어민들 허탈>에서 검찰 수사의 미흡한 부분을 지적하긴 했다. 하지만 <중과실 판단없어도 배상엔 문제없어>에서 “민사소송의 경우 피해입증 책임은 원고에게 있다”며 “하지만 현실적으로 볼 때 나이가 많고 생계가 어려워진 어민들이 이를 입증하기란 쉽지 않다”고 지적하면서도, “중과실이든 업무상 과실이든 어민들은 피해입증만 하면 1000% 보상을 받을 수 있다”며 검찰이 삼성중공업에 대해 “중과실을 적용하느냐, 업무상 과실을 적용하느냐는 결과적으로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황당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는 삼성중공업이 중과실 책임을 피할 수 있도록 힘을 싣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삼성의 친인척신문인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는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동아는 12면 <특검 ‘에버랜드 창고’ 압수수색 유명 미술품 등 수천여점 확인>에서 삼성 측의 말 바꾸기는 전혀 언급없이 아예 에버랜드 창고에 대해 “홍라희 씨가 관장으로 있는 삼성미술관 리움의 수장고로 확인됐다”고 단정 지으면서 ‘행복한 눈물’을 찾지 못한 데 초점을 맞춰 삼성비자금과는 무관한 것처럼 보도했다. 또 <검 “태안 유조선 충돌은 쌍방 과실”>에서는 검찰의 부실수사에 대해 단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주요 현안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부실보도에 그친 동아는 1면 <2002~2006 어느기업서 일자리 많이 늘렸나>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가장 많이 만든 기업은 삼성전자”라며 삼성의 로고를 표시해주면서까지 부각시켰고, 4면 <일자리 어떤 기업이 만드나>와 5면 <매출 1000대 기업은>에서도 삼성전자를 집중 부각시켰다. 또 경제섹션에도 <삼성 ‘강남시대’ 본격 개막>을 실어, “삼성물산이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서초타운에 입주하기 시작하면서 삼성그룹의 ‘강남시대’가 본격 개막됐다”며 낯 뜨거운 ‘홍보성 기사’를 남발했다.
중앙은 언급할 것도 없다. 그저 10면의 <삼성특검, 에버랜드 창고 수색>에서 관련 소식을 단신으로 다루고, <‘책임 범위 결정’은 판단 유보>에서 단순하기 그지없는 수사내용 전달에 그쳤기 때문이다.
현재 삼성비자금 특검과 태안기름유출사고는 가장 중요한 국민적 관심사 가운데 하나로 언론은 정확하고도 깊이 있게 다루는 것이 마땅하다. 그럼에도 대다수 언론은 삼성의 눈치를 보느라 본연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고, 삼성은 이런 언론에게는 광고를 게재하면서 그나마 제대로 된 역할을 하는 신문에게는 광고로 재갈을 물리려 한다.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여론을 왜곡하려는 치졸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이 삼성이 그토록 당당하게 내세우던 일류인가?
우리는 삼성의 잘못을 비판하고 국민들이 꼭 알아야 될 부분을 지적함으로써 언론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는 신문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치졸한 삼성의 ‘광고통제’ 따위로 흔들리게 두지 않을 것이다. 아울러 불법적인 비자금 조성의 진실이 만천하에 낱낱이 드러나고, 태안기름유출사고에 대해 삼성이 잘못에 걸맞은 책임을 질 수 있도록 시민사회 전체와 연대해 대응해 나갈 것이다.
삼성이 자본을 앞세워 비판언론을 길들이려는 이 따위 꼼수로 자신들의 잘못이 덮어지고 유리한 여론이 조성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삼성이 치사하게 나오면 나올수록 구린 구석이 더 많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임을 알아야 한다. <끝>
(사) 민주언론시민연합 (직인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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