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계를 비롯한 국민의 반대 여론에도 윤석열 정권이 강행하고 있는 수신료 분리징수 시행령 개정안이 졸속에 졸속을 거듭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7월 5일 오전 정부여당 추천 위원 2명만으로 수신료 분리징수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그동안 법과 절차를 무시하고, 공영방송 존립을 위협하는 수신료 분리징수 추진에 반대해온 야당 추천 김현 위원은 이날도 2명 위원의 일방적 의결에 항의하며 퇴장했다.
결국 방송통신위원회는 5명 체제로 운영돼야 함에도 윤석열 대통령의 한상혁 위원장 강제 해임으로 공석이 된 자리를 직무대행 중인 김효재 위원, 그리고 이상인 위원의 결정으로 시행령 개정 절차를 거쳤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비정상적 의사결정 구조는 합의제 독립기구로서 독립성이 생명인 방송통신위원회가 대통령 지시에 따라 자유자재로 위원회 구성이 바뀔 수 있고, 행정의 일관성 없이 권력 하청기관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에 불과하다.
수신료 분리징수는 국민의 수신료 납부 선택권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무의미하게 소모되는 징수비용만 늘려 공영방송 KBS, EBS의 경영악화를 가속시키려는 악성 포퓰리즘에 불과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한 줄 공약에서 KBS의 사극 의무 제작, 국제뉴스 30% 이상 편성, 영상 아카이브 오픈소스 공개를 주문했다. KBS 경영이 더 악화되면 대하사극이나 아카이브 공개 등의 신규 프로젝트와 국제뉴스는 물론 지역방송까지 축소될 우려가 크다. 윤석열 정권은 수신료 분리징수로 변경한 뒤 어떻게 그 공약들을 달성하겠다는 말인가.
윤석열 정권은 강성 지지층을 동원한 온라인 여론조사에서 찬성이 높게 나왔다며, 상위법 취지를 거스르는 시행령으로 분리징수를 추진해왔다. 그러나 방송통신위원회가 10일로 단축시킨 입법예고 기간에도 4,000여 건 넘는 반대의견이 올라와 ‘온라인 여론조사’의 허상이 폭로됐다. 수많은 국민참여 의견과 언론·여성·인권·환경단체들의 의견서 제출에 방송통신위원회는 그 흔한 면담조차 시도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수신료 징수를 담당하는 한국전력마저 입법 반대의견을 내고, 분리징수를 추진하면 징수비용이 수신료를 상회할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냈지만 방송통신위원회는 묵묵부답이다. 이렇듯 최소한의 추진 정당성마저 잃고도 방송통신위원회가 ‘2인 의결’을 강행한 것은 범죄행위나 다름없다.
엄청난 비용 낭비를 초래하고 공영방송의 근간을 뒤흔들 수신료 분리징수 시행령은 방송통신위원회의 초법적 의결로 차관회의, 국무회의, 대통령 재가 절차만 남겨 놓고 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 청구 및 시행령 개정절차 정지 가처분이 신청돼 있고, 김효재 직무대행과 이상인 위원은 직권남용죄 등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된 상태다. 헌법재판소의 현명한 판단과 공수처의 신속한 수사로 시행령 개정 폭주를 멈춰 세워야 할 것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회의 역할이다. 우리는 수신료 문제에 대한 시민공론화위원회 구성을 지속적으로 촉구해왔다. 공영방송 공적 역할과 수신료 책정의 균형을 찾아야 하는 만큼 제대로 된 토론과 숙의 과정은 필수적이다. 한국전력에 징수하는 수수료보다 낮은 EBS 수신료 분배 비율, 본사보다도 심각한 KBS 지역총국의 재정 악화, 수신료 투명성 강화 등 해묵은 과제도 산적해 있다.
마침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공론화위원회 설치를 요구했고, 정의당도 공론화위원회 구성 등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김진표 국회의장도 분리징수가 상위법을 무시하고 시행령 개정으로 추진되는 것과 시행령 개정이 행정소송에 의해 무효로 될 가능성을 표명했다. 국회와 국회의장에 촉구한다. 국회는 학계, 언론계, 시민사회, 정치권을 망라한 범국민적 차원의 공론화위원회 설치로 수신료에 대한 시청자 여론을 제대로 수렴하고, 합리적 숙의 과정을 거쳐라. 방송을 손아귀에 넣으려는 거대 양당의 정치 후견주의로 엉켜온 실타래를 이젠 풀어내야 할 때다.
2023년 7월 5일 / (사)민주언론시민연합(직인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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