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 포기한 정권, 검찰 그리고 조중동
9일 검찰이 용산참사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예상했던 대로 검찰은 경찰을 ‘무혐의’ 처리해 살인진압을 정당화했고, 철거민 20명을 기소해 참사의 책임을 뒤집어 씌웠다. 5명 희생자의 사인은 밝히지 못했으며, 용역업체의 불법 동원에 대해서는 용역업체 직원 몇 명을 불구속하는 데 그쳤다. 그러면서 검찰은 6명의 생명을 빼앗은 경찰의 살인진압을 두고 ‘아쉬움이 없지않다’고 평했다. 과연 대한민국에 법이 존재하는 것인가 되묻게 하는 수사 결과였다.
그러나 이날 이명박 대통령은 라디오 연설을 통해 ‘법과 원칙’을 거듭 강조했고, 숱한 비위의혹을 받고 있는 현인택 통일부 장관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서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이명박 시대의 ‘법과 원칙’은 재벌과 고위공직자, 공권력에는 한없이 관대하고, 가진 것 없고 힘없는 서민들에게는 가혹하기 짝이 없다. 이제 힘없는 서민들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억울한 일을 호소하려면 죽기를 각오해야 할 판이다. 서민은 아무리 절박한 상황에서도 ‘합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면 죽어도 어쩔 수 없다는 게 ‘이명박식 법치’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살인진압 면죄부 주며 “경찰도 피해자”
10일 조중동은 사설을 통해 야만적인 ‘이명박식 법치’를 목청 높여 엄호하고 나섰다.
조선일보는 <‘용산’ 책임은 철거민․경찰보다 정부․국회에 물어야>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제목에서 용산참사를 ‘용산’이라고 표현한 조선일보는 사설 본문에서는 “용산 재개발 농성현장 화재 사망사건”이라고 썼다. 조선일보가 경찰의 살인진압을 은폐하기 위해 얼마나 애쓰는지 역력하게 드러난다.
사설은 “시민의 안전을 보호할 책임이 있는 경찰로선 농성자들이 대로변 건물을 점거한 채 화염병을 던지고 새총을 쏘는 사태를 방관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경찰의 진압작전을 이번 사태의 직접 원인으로 보고 그 책임을 경찰에 물을 순 없다”고 검찰 발표에 적극 동의했다. 그러면서 경찰의 살인진압에 대해 “서툴렀다”, “적절치 못하고 비효율적이었다”며 면죄부를 줬다. 또 ‘검찰 수사결과 발표 후 김석기 청장 자진 사퇴’라는 정권의 사태수습 시나리오가 파다하게 알려진 상황에서 “경찰의 누군가는 책임을 지는 게 도리”라는 면피성 언급을 덧붙였다.
나아가 조선일보는 “근본책임은 정부와 국회에 있다”며 경찰의 살인진압과 검찰의 면죄부 수사를 물타기 했다. 정부, 국회, 지자체가 재개발 과정에서 합리적인 조정절차와 제도를 만들지 못한 것이 근본 문제이기 때문에 철거민은 물론 살인진압을 편 경찰도 피해자라는 것이다.
중앙일보, “전철연 추가 수사․처벌하라”
중앙일보 역시 <눈물과 불법 폭력, 악순환 고리를 끊자>는 애매한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검찰 수사를 대놓고 옹호한 것도 조선일보와 다르지 않았다. 중앙일보는 “우리는 검찰이 경찰 진압에 대해 ‘농성자들의 화염병 투척 등으로 시민의 생명과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는 상황에서 방염복․진압봉 등 최소한의 장비만 갖춰 조기 투입한 조치를 위법이라고 보기어렵다’고 평가한 것에 공감한다”고 못박았다.
나아가 “이번 사태는 불법․폭력시위를 하면 어떤 식으로든 이익을 보고, 그 결과 불법이 재발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일대 전환점이 돼야 한다. 경찰이 소신을 갖고 법질서를 수호하게끔 분위기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매사를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행태에 대해 과거처럼 무원칙한 관용이나 부화뇌동, ‘떼법’ 영합주의로 대처해선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다”는 섬뜩한 주장까지 폈다. 경찰의 살인진압을 “소신”, “법질서 수호” 운운하며 정당화 한 것이다.
이 뿐 아니다. 중앙일보는 “전국철거민연합의 ‘폭력 대행’과 함께 용역업체들의 횡포도 밝혀진 만큼 이들의 조직적 불법 행태에 대해서도 추가 조사와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며 전철연에 대한 추가 수사와 처벌까지 촉구하고 나섰다.
반면 검찰 수사의 문제에 대해서는 그 어떤 구체적인 지적 없이 “수사를 더 철저하게 진행해 경찰은 과연 전혀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는지 가려내야 한다”, “경찰의 진압 매뉴얼도 차제에 정밀하게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을 뿐이다. 그러면서 사설은 “분쟁 당사자 간에 원만한 합의가 이뤄지게끔 조정․구제 장치를 근본부터 재정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동아일보, “경찰에 과도한 책임 지워선 안돼”
동아일보는 아예 <용산참사, 수사결과 넘어 수습의 지혜를 모을 때>라는 제목의 사설을 싣고, 사건을 매듭짓자고 나섰다.
동아일보 역시 경찰에 면죄부를 준 검찰 수사를 적극 옹호했다. 사설은 “화재의 직접원인은 시너 살포와 화염병 투척이므로 경찰의 공무집행에 법적 책임을 지울 수는 없다고 본다”, “불법폭력 시위가 기승을 부리는 우리 사회에서 경찰에 과도한 책임을 지운다면 일선에서 법질서를 유지하는 공권력의 위축으로 사회 혼란이 가중될 우려도 있다”는 주장을 폈다. 살인진압의 처벌을 “과도한 책임을 묻는 일”이라는 게 동아일보의 시각이다.
그러면서 “용산사건에서 경찰이 필요하고 충분한 조치를 취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면피성 언급을 덧붙이고, 김석기 청장의 ‘자진사퇴 시나리오’를 염두에 둔 듯 “공권력의 권위를 살리면서 경찰조직과 국가를 위하는 길, 명분도 있고 자신에게 떳떳한 길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야당에 대해서는 ‘사건을 확대시키지 말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동아일보는 “사회적 갈등을 확대 재생산해 정치적 이득을 챙기려 해선 안된다”며 “민주당의 특검 수사 요구는 정략적이다”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철거민과 영세 상인들의 피해를 줄일 합리적인 재개발 정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조중동은 검찰 수사를 대놓고 옹호하고, ‘이제는 근본대책 마련에 나설 때’라고 주장한다.
정치권이 재개발정책을 점검하고, 철거민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고쳐야 한다는 데 토를 달 사람은 없다. 그러나 경찰의 살인진압을 철저하게 수사해 그 책임을 묻는 일과 재개발 정책을 개선하는 일은 따로 떨어져있지 않다.
철거과정에서 이른바 ‘용역깡패’들이 세입자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경찰이 ‘용역깡패’를 진압에 동원하는 것은 현행법으로도 명백한 불법이다. 그러나 법이 ‘힘있는 사람’ 편만 드는 사회 분위기에서 철거민들에게 법은 아무런 힘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검찰은 철거민의 불법만 가혹하게 처벌하고 공권력의 불법은 철저하게 눈감았다. 재개발사업과 관련한 법과 제도를 개선하는 일 못지않게 ‘법이 만인에게 평등하다’는 것을 보여주지 일은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는 ‘법의 논리’가 아닌 ‘힘의 논리’에 따르게 되고 이 과정에서 가난한 사람, 힘없는 사람들은 억울한 일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경찰의 살인진압을 감싸며 ‘이제는 제도개선’ 운운하는 조중동의 행태는 교활한 물타기이자, ‘법치’를 가장한 ‘힘의 논리’일 뿐이다.
철거민들의 아픔에 손톱만큼이라도 공감한다면 경찰의 살인진압과 검찰의 면죄부 수사를 이토록 당당하게 감싸기 할 수는 없다. 조중동은 ‘불법시위를 벌이다 죽었으니 어쩔 수 없다’는 주장을 ‘적법한 공권력행사’로 포장하고, ‘경찰의 살인진압은 이제 따지지 말자’는 주장을 ‘근본 대책마련’으로 포장하고 있다. 21세기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의 탈을 쓰고 이런 ‘야만’과 ‘반인인륜’을 저지르는 집단이 또 있을 것인가?
‘법치’를 포기한 정권과 검찰, ‘인륜’을 포기한 조중동 행태는 반드시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사)민주언론시민연합(직인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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