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료 인상으로 포장한 공영방송법의 덫
KBS 수신료 인상은 방송의 독립성과 공공성 차원에서 논의해야
한나라당의 언론 장악과 재편에 있어 남은 카드는 공영방송법 제정과 코바코 해체. 밀어부칠 때 제대로 밀어부치겠다는 기세다.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KBS 수신료 문제를 거론하며 이를 포함한 방송공사법안(공영방송법)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임시국회에서 언론악법을 기어이 통과시키고, 오는 9월 경 공영방송법 제정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표출한 것이다.
작년 연말 언론을 통해 알려진 한나라당의 공영방송법은 5인으로 구성되는 공영방송경영위원회가 사장 선임권을 갖고, 수신료 80%와 광고 수입이 전체 재원의 20를 넘지 않도록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만 이번 발표에 따르면 국회의 KBS 예산 승인권은 포함돼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공영방송법 제정은 정치권력의 공영방송에 대한 수직 직계화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일찌감치 부정적인 여론을 받았다. 신방겸영과 재벌의 미디어 시장 진출을 보장하고, 공영방송에 대한 정치적 장악과 운영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방편으로 제시된 것이 공영방송법이다. 이 법안이 제정되고 코바코 해체까지 추진되면 ‘1국(관)영-다(多)민영’ 체제가 구축돼 MBC 등은 민영화의 길을 강제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한나라당은 공영방송법 제정을 제기하며 KBS 수신료 문제를 슬쩍 끼워넣었다. 수신료 인상은 워낙 공영방송법 제정에서 거론되지 않았던 문제이다. KBS 수신료 인상은 얼마든지 검토할 수 있는 문제다. 다만 공영방송의 공공적 성격을 강화하고 정치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되는 방향에서 시민사회의 동의를 거쳐 결정해야 한다. 정작 시청료를 내게 되는 시청자의 주권과 직접적인 관계를 갖기 때문이다. 공영방송이 정말 어렵다면 무엇 때문에 어려운지, 수신료 인상으로 재정이 확대되면 공영방송으로서 어떤 사회적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정치권에서 뚝딱뚝딱 해치울 일이 결코 아니다.
이병순 사장 체제의 등장 이후 KBS는 시민사회로부터 수많은 비판과 질타를 받아왔다. 이사회와 사장 선임 과정에 문제가 제기되었고, 양심적인 사원들에 대한 대량 징계가 이어지고 있으며, 사회비판적인 시사프로그램의 개편, 비정규직 해고 등 시민사회의 정서와 시종일관 이반되는 길을 걸어왔다. 더군다나 취재현장에서 시민들이 KBS에 보내는 냉소와 냉대는 현 KBS의 위상을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지난 1년 동안 정치권력의 방송 장악 논란의 최일선에 노출됐던 KBS가 반성과 새로운 전망의 제시없이 달랑 수신료를 인상하겠다고 나선다면, 수신료 인상을 감당하게 될 시청자 어느 누가 선뜻 동의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시점에서 수신료 인상 추진을 기정사실화 하는 것은 임시국회에 상정된 언론악법을 통과시키되 KBS와 MBC 당사자들의 저항을 분리시키기 위한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 지난 과정에 언론악법은 시민사회와 언론인, 언론학자들로부터 파산 선고를 받았다. 한나라당은 이를 잘 알고 있다. 언론악법을 강행하자니 시민사회와 언론노조의 거센 반발이 계속되고, 여론도 받쳐주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이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한 치졸한 자구책으로 수신료 인상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KBS노조 간부들이 언론 인터뷰 등에 부하뇌동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정확히 한나라당의 노림수에 놀아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독인지 약인지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KBS노조 간부들의 태도를 한나라당은 정확히 간파하고 있는 것이다. KBS노조는 조중동과 자본이 미디어 환경을 잠식하게 될 언론악법 반대 투쟁에 수수방관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KBS노조가 지금까지의 모습을 반성하지 않은 채, 수신료라는 탐욕에 눈이 멀어 공영방송법 제정에 고개를 끄덕인다면, 수신료 인상은커녕 시청자들로부터 현재의 수신료조차 거부당하는 사태에 직면하게 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KBS를 국영방송인양 생각하는 한나라당의 달콤한 덫에 걸려 헤어나지 못한다면 KBS노조는 불타는 숲속에서 열매를 따먹는 위험을 자초할 것이다.
거듭 강조컨대 KBS의 수신료 인상은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방송의 독립성을 실현하고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향에서 적극 검토되어야 한다. 공영방송의 발전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구하는데 실패한 한나라당이 정치적으로 악용할 문제가 아님을 분명히 한다.
2009년 7월 15일
언론개혁시민연대(약칭 언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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